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 (문단 편집) === [[혈연 때문에 개고생|문제 많은 아버지]] === || [[파일:external/da7858ff7d2a44fbc9ff983f6ad0ff7a605669f64c5efc70da67c71453b03e86.jpg|width=100%]] || || 왼쪽이 당시 아르헨티나의 독재자이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오른쪽이 막시마 왕비의 아버지인 호르헤 소레기에타 농업부 장관 || 막시마의 [[아버지]] 호르헤 소레기에타(Jorge Zorreguieta, 1928-2017)[* 여담으로 막시마의 어머니하고는 [[불륜]]으로 시작한 관계이다. 그래서 [[이복형제|이복언니]]가 3명 있다.]는 일명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70년대 군부독재 시절,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밑에서 1976년부터 1979년까지는 농업부 차관을,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농업부 장관을 지냈으며, 비델라가 집권한 모든 기간 동안 국가곡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비델라 정권은 자신에게 반하는 무고한 시민들과 지식인들을 '공산주의자'나 '기독교와 서구 문명의 적'으로로 몰아 [[고문]], [[강간]] 후 살해했는데, 이렇게 단 5년 동안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만 최소 1만 2천 명에 달해 '남미의 나치'라는 말까지 붙을 정도였다. [[https://web.archive.org/web/20150615204510/http://aliciacomelli.com.ar/wp-content/uploads/2014/06/foto.jpg|당시 상황]] [[http://r-scale-7f.dcs.redcdn.pl/scale/o2/tvn/web-content/m/p1/i/e/4/e442e6fec9212740102675a86373325a.jpg?type=1&srcmode=4&srcx=0/1&srcy=0/1&srcw=972&srch=3000&dstw=972&dsth=3000|아직 시신을 찾지못한 피해자들의 사진]] 특히 [[임신#s-2|임신]]한 [[여성]] 정치범들은 좁은 수용소 안에서 수갑과 족쇄를 찬채 출산했으며, 출산한 산모들은 군용기에 실려가 산 채로 바다에 버려졌고, 그렇게 탄생한 신생아들과 영유아 정도밖에 안 된 그들의 자식들 500명은 친정부 성향 가정에 강제로 [[입양#s-1|입양]]되었다. 이에 대해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생전에 자신이 군사 정권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는 궤변을 남겼왔으나, 네덜란드 의회의 요청을 받아 미셀 보드[* Michiel Baud, 1952~,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라틴 아메리카 연구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소레기에타는 비록 직접적으로 비델라 정권의 반인륜적 범죄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높은 위계에 있던 특성상 비델라 정권에 반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산하 직원들이 실종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풀어서 말하자면, 소레기에타는 '''[[기무라 헤이타로|비록 직접적으로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지시하지는 않았어도 이를 눈감아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방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1976년]] 12월 21일에 리디아 아미고(Lidia Amigo)라는 여학생이 납치되자 그녀의 아버지이자 소레기에타의 전임 농업부 차관이던 알베르토 아미고(Alberto Amigo)는 소레기에타에게 딸에 대한 도움과 정보 제공을 요청했으나, 소르기에타는 이를 듣고도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https://web.archive.org/web/20080928162349/http://www.abogarte.com.ar/zorreguietanohizonada.html|출처]] 참고로 상관인 비델라는 한술 더 떠 정신병원에서 요절한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요청으로 돌봐줬던 프랑스인 수녀 2명이 단지 '실종자'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들을 풀어주라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그 수녀들은 참혹하게 고문당한 후 산 채로 바다에 던져져 죽었다.][* 참고로 [[기무라 헤이타로]]는 반정부 인사가 아닌 포로 학대를 인지하면서도 방치한 케이스인데, 이쪽은 한술 더 떠 [[전시행정|겉으로는 군인들에게 포로 학대를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0RM8HJH0NWU#t=177|독재정권의 악행과 호르헤 소레기에타의 연계를 폭로한 영상.]] 막시마는 카톨리카 아르헨티나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뉴욕]]과 [[유럽]] 등지의 대형 국제 금융기관에서 근무했다가 왕세자였던 빌럼알렉산더르를 만나 결혼했다. 막시마 소레기에타가 훗날 [[네덜란드]]의 [[빌럼 알렉산더르]] 왕세자와 결혼할 당시 아버지의 과거 행적으로 네덜란드 내에서 논란이 일자, 막시마는 자신의 친정 가족들을 아무도 결혼식장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네덜란드]] 국왕이 아르헨티나인들을 능욕하는 결혼을 했다."는 얘기가 지금도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막시마 소레기에타와 빌럼 알렉산더르의 결혼이 군부독재시절 고통을 겪었던 [[아르헨티나]] 국민과 아르헨티나 역사를 우롱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2012년에 유아 납치 혐의로 50년형을 선고받고 2013년에 옥사한 상관 비델라하고는 정반대로 군사 정권이 끝나기도 전에 공직에서 물러났다는 이유로 인권 침해로 기소되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2009년]]에 퇴직할 때까지 여러 식품 관련 단체의 회장으로 활동해오며 반성의 기색도 없이 천수를 누렸고, [[2017년]] 8월 8일 오랫동안 앓아온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향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